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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오버진 14화


“기광종? 그게 뭐지?”

“참, 우선 메어부터... 조금 기다려줄래요?”


하르가 약초를 받았다. 그녀는 솥에 담긴 수프를 작은 국자를 이용해, 주둥이가 긴 병으로 옮겨 담았다. 두둥이 썼던 물통에 흙을 씻겨내고, 벽에 기대어져 있던 절구와 공을 가져와 세척된 약초를 빻기 시작했다. 그것이 초록빛의 덩어리로 으깨어지자, 조금 덜어내 수프에 넣고 저었다. 그렇게 완성된 치료제를 누워있는 메어의 곁에 두었다.


“자, 혼자 먹을 수 있겠지?”

“응, 고마워 하르.”


하르가 다시 바유를 바라보았다.


“얘기를 계속할게요.”


그녀가 오른팔을 들자, 플-뤼니가 날아와 그녀의 손에 앉았다. 하르가 팔을 내리며 바유와 두 두둥을 향해 자세를 고쳐 앉았다.


“저와 플-뤼니는 기광종.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색채라고 하면 편할 것 같네요.”

“만들어졌다고? 누가 만들었지?”

“네. 발명가 히리스 기엘 님이에요.”

“들어본 적 없다.”

“워낙 외지에 계셨죠. 지금은 돌아가셨습니다.”

“이런, 딱하군.”


바유의 응급 처치를 끝낸 두 두둥이 하르 쪽을 향해 돌아앉았다. 하르는 플-뤼니를 어루만지며 얘기를 이어나갔다.


“그렇다면, 저와 플-뤼니는 무슨 색일까요?”

“음… 짐작 가지 않는걸.”

“기광종은 색을 ‘코드’라는 체계로 구분해요. 저는 #-ffffff, 플-뤼니는 #-ff0a0a에요.”

“응? 전혀 직관적이지 않은데.”

“몸에 그어진 이 선의 색이에요.”


“신기하지 않아요? 특이한 구분법이지요.”

“저희도 여러분처럼 어떠한 의지로 움직여요. 설명은 충분한 것 같네요. 세상엔 여러 기광종들이 저희처럼 방랑하고 있어요. 두 두둥은 저희가 유랑자 생활을 하던 중 만나 친구가 되었죠.”

“그렇군… 기광종이라. 메어, 너는 알고 있었나?”


몸을 일으켜 세워 수프를 마시던 메어가, 병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물론 몰랐어. 바유와 너희가 오는 동안, 하르와 얘기하며 알게 됐지.”

“메어, 좀 괜찮아졌지요?”

“응. 몸이 가벼워진 것 같아. 속도 더 아프지 않고. 바로 수련해도 괜찮으려나?”

“아직은 편히 쉬세요. 앞으로 일주일 정도는 약을 넣은 수프를 먹고, 가벼운 운동 정도만 하세요. 과유불급이지요.

“그렇지만 민폐가 되는 걸… 너무 많은 걸 받아버렸어.”

“괜찮아요. 친구를 돕는 건 당연하지요.”


“정말 고마워. 이 말 밖에 해줄 수 없어서 미안하네.”

메어가 병에 든 수프로 목을 축였다.


“색채귀 녀석들의 습격이 온다면, 우리도 돕겠다.

바유가 하르를 보며 강인한 의지를 내비치자 하르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괜찮아요. 두둥은, 보이는 것보다 아주 강하답니다.”

“저런 아이가? 으음, 그럼 마음만큼은 받아줬으면 좋겠군.”

“당연한 말씀이에요.”







“자, 어떻게 할까. 예람.”

“그렇네요. 절(切) 님의 명령이 티틀 님의 이상과 겹치는 것은 좋은데…”

“밥그릇을 빼앗길 것 같기도. 아니면, 날 시험하는 건가?”

“일단은 생포하고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맞아.”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동안, 돌로된 승강기가 성당을 원래 위치에 돌려놓고, 지면과 만나며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그것이 완전히 땅과 합쳐지고 나선 마름모꼴의 선이 사라지면서 땅과 하나가 되었다.


“기다리느라 수고했어. 다음 작전까지 영역 밖에서 대기해.


그의 말을 들은 색채귀들은 하나 둘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영역 바깥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서쪽에 있던 한 색채귀가 움직이지 않다가, 티틀을 향해 다가왔다. 다른 색채귀들은 그들을 보며 속닥거리다 무시한 채 갈 길을 갔다.


“응? 왜 이쪽으로 와? 반대쪽으로 가는 거야?”

“저기, 티틀 씨. 드리고 싶은 말이.”

“무슨?”




!!!

티틀의 주위로 작은 폭음이 들려왔다. 이윽고 바닥에 발 도장처럼 생긴 표식이 생기며 폭발이 일어났다. 티틀은 공중제비를 뛰며 그것을 피해 사뿐히 땅으로 착지했다. 동시에, 말을 걸어왔던 색채귀가 입을 벌리며 그에게 다가왔다. 그의 두 다리와 두 팔에는 날카로운 손톱과 아기 장갑과 같이 생긴 손발이 끼워져 있었다. 땡그란 눈, 세로 동공. 뒤로 갈수록 얇아지는 꼬리. 얄쌍하고 간사한 긴 몸. 그리고 그 긴 몸을 장식하는 낫과 같이 생긴 쇠붙이들. 녀석은 벽에 붙어 다니는 도마뱀을 똑 닮아 있었다.


“무슨 짓이야, 블루벌리?”

“놀랍군요! 꽤 준비한 공격이었습니다만…”


티틀이 양손에서 식충을 불러내자, 블루벌리는 입을 다물며 뒤로 크게 점프해 거리를 벌렸다.


“네가 단단히 미쳤구나. 왜 티틀 님을…”

“예람, 내가 처리할게.”

“혼자서 말입니까?”


땅 밑에서 다른 색채귀가 모습을 드러냈다. 녀석은 시옷 모양의 입, 옹기종기 모인 삼각형 형태의 화난 이목구비의 얼굴을 갖고 있었다. 귀에는 육구 모양의 털이 삐져나와 있었고, 비대칭의 뿔이 돋아있었다. 짧둥한 앞다리에는 거대한 발바닥이 보였다. 전신의 형태는 뭉툭한 사자와 같았고, 꼬리는 거대하고 길죽한 미래식 병기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분명 생물이지만 하반신과 상체의 일부는 기계로 되어있는, 소위 ‘사이보그’였다.


“퍼스, 너도 한패야?”

“…”


녀석은 말없이 꼬리를 겨눠 무언가를 쏘았다. 꼬리에서 묵직한 저음이 터져 나오며, 압축된 공기로 만들어진 고양이 주먹이 티틀의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 그는 미처 피하지 못한 듯, 공격을 허용했다. 퍼스는 구멍에서 블루벌리의 곁으로 점프해 위치를 사수했다.



“티틀 님!”

“아 괜찮아, 괜찮아. 이걸로 아플 리가 없잖아?”


분명히 명중했지만, 티틀은 단 한 발자국만 물러나 있었다. 얼굴에는 약간의 생채기만 그어져 있었고, 그의 웃음기는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이윽고 블루벌리의 남보라색 영역, 퍼스의 겨자색 영역이 나타났다. 영역의 기운을 느낀 다른 색채귀들이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티틀은 낌새를 눈치채고, 식충을 공중에 띄워 신호를 보냈다.


하늘을 나는 식충들이 궤적을 그리며 빙빙 돌기 시작했다.




‘자리를 지킬 것’


색채귀들은 뜻을 상기하며 걸음을 멈추었다.


블루벌리는 퍼스와 함께 티틀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블루벌리는 전신의 끄트머리에 영역을 모아 낫을 만들었고, 퍼스는 꼬리에서 무언가를 쏠 준비를 했다.


“놀라울 정도로 무식하지 않습니까? 저희가 이 전쟁으로 무슨 이득을 얻죠? 저희는 당신의 배를 채우려고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당신들이 계약을 따내면 보상을 받고 움직이는 비즈니스적 관계일 뿐.”

“그래서?”

“그래서라니, 잠자코 있으면 되는 거잖습니까? 전쟁을 철회하십시오. 당신에게 불만이 많은 대원이 한둘일 것 같습니까?”

“뭘 하려고?”

“수호자들의 편에 설 겁니다.”


“뭐?”

“푸핫! 다예람, 빠져 있어봐.”


티틀이 웃으며 블루벌리에게 빠르게 날아가 발차기를 날렸다. 그러나 그 앞을 퍼스가 만든 고양이 주먹이 막았다. 틈을 놓치지 않고 블루벌리는 입을 벌리더니 영역을 끌어모았다. 이윽고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며 티틀의 배에 무는 공격이 꽂혔다.


“?!”

“헤집어놓는 낫, 저의 별명이지요. 당신이라 해도 근거리에서 맞는 건 좀 치명적이죠?”


티틀은 웃으면서 무릎으로 블루벌리의 턱을 찼다. 그의 아래턱이 위턱과 맞물리자 이 사이로 핏방울이 튀었다.


“웃기네. 그런 별명은 누가 지어줬어?”

“자화자찬이지요. 제 놀라운 실력에 대한.”


블루벌리가 입을 크게 벌리며 웃자, 다시 퍼스의 고양이 주먹이 티틀을 후려쳤다. 노린 곳은 티틀의 머리. 그는 다시 방어하지 못한 채 다예람이 있는 쪽으로 걷어차여 날아갔다. 그는 몸을 숙이고 발톱을 땅에 박아 속도를 천천히 줄였다. 티틀이 바닥에 안착했을 때에는, 조소하고 있는 블루벌리 만이 남아있었다.


퍼스가 보이지 않는다. 아까 티틀이 공격에 당했을 때, 퍼스는 두 팔을 이용해 고속으로 땅을 파 몸을 숨겼다. 지면이 이리저리 들썩거린다. 녀석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그의 시선을 어지럽히던 사이, 블루벌리가 빠르게 거리를 좁히며 다시 한 번 영역을 끌어모았다.


그가 블루벌리의 물기를 피하자마자, 배후의 지면에서 퍼스가 튀어나와 주먹을 쏘았다. 공격은 티틀의 등 쪽에 적중하며 그가 땅에 얼굴을 처박게 하였다. 그는 팔굽혀 펴는 자세를 하며, 그들의 반대편으로 몸을 튕겼다. 티틀은 공중에서 한 바퀴를 돌아 그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역시 내가 엄선한 녀석들이야. 똑똑하군. 확실히 리머미보다 쓸만해.”

“누구랑 비교하십니까?”


블루벌리가 팔짱을 끼며 티틀에게 다가왔다.


“역시 당신은 거품이었어.”

“흐음… 그런가, 좀 얕보이고 있나?”

“아니, 밑천이 까발려진 거지요.”


블루벌리가 입을 열며 의지색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의 이빨 위에 푸른빛의 광자가 모였다. 광자들은 날붙이의 형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가 입을 더욱 크게 벌리자, 녀석의 구내는 바늘로 가득 찬 구덩이가 되었다. 블루벌리의 옆의 땅이 진동하며 퍼스의 꼬리가 튀어나왔다.




“끝내겠습니다.”


퍼스가 꼬리를 흔들자, 블루벌리가 지면에 네 발을 갖다 댔다. 그는 다리를 굽혔다가 풀며 티틀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퍼스는 그때에 맞춰 꼬리를 크게 휘두르며 티틀이 빠져나갈 퇴로에 주먹을 날렸다.


“읍?!”


티틀은 어느새 블루벌리의 앞으로 와 그의 주둥이를 움켜쥐고 있었다. 그의 영역이 펼쳐짐과 동시에, 영역이 맹렬히 부딪히기 시작했다.


“네 의지색은 영역으로 날붙이를 만드는 거였지? 그러면 이렇게 해줄게. 턱이랑, 턱이랑 키스~”


티틀은 두 팔을 이용해 블루벌리의 두 턱에 강력한 충격을 가했다. 블루벌리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손을 입에 가져다 댔다. 그의 몸은 균형을 잃어버리며 땅바닥의 가시와 자갈들에 갈려버렸다.


“귀여운 우리 퍼스.”


티틀은 블루벌리의 꼬리를 잡아 높게 들어 올렸다. 곧 땅이 불쑥거리자, 그는 두더지를 잡는 것처럼 블루벌리를 퍼스에게 내동댕이쳤다. 퍼스의 눈 앞이 흔들리며 감각이 흐트러졌고, 결국 엉뚱한 방향으로 땅을 판 그는 지면에 머리를 노출하고 말았다. 티틀은 그를 끄집어내 허공에 던져 발차기를 꽂았다. 그가 블루벌리의 위까지 날아오자, 티틀이 위로 다가와 발톱으로 찍어누르며 둘을 꼬치로 만들어버렸다.


블루벌리와 퍼스가 피를 토했다.


“너희 둘을 합쳐도 제이 룽보다 못해. 너무 착각하는 거 아니야?”


티틀이 발을 들어 올리자 그들의 복부가 피로 물들었다. 퍼스가 꼬리로 블루벌리를 감아 잠시 뒤로 도망쳤다.


“흐흐… 과연 그럴까요?”




툭-




티틀의 뒤쪽 왼팔이 잘려 바닥으로 떨어졌다. 티틀이 꽤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가 퍼스에게 한눈 팔린 사이, 블루벌리가 영역으로 만든 날붙이를 등 쪽에 붙여놓았던 것이다.


“이런, 목을 노렸는데...”


급습은 실패로 돌아갔다. 티틀의 팔이 목으로 향한 칼날 쪼가리를 감각적으로 내쳐, 방향을 바꿔버린 것이었다.


그가 손을 흔들자, 식충들이 잘린 팔을 들고 떨어진 곳으로 날아왔다. 그가 팔을 돌려 방향을 맞추자, 순식간에 잘린 부분이 회복되었다.


“신호를 주고, 수발을 든다, 역시 놀랍군요. 벌레에 어울리는 하찮은 능력이네요.”

“아, 못 참겠어.”


티틀의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지며 두 눈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알려줄까? 암시장의 색채귀들이, 내 명령에 복종하는 이유.”


먹힌 자들의 유골. 비명과 공포가 만들어낸 모래알들로 이루어진 사막. 그의 영역에서 가히 충격적인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블루벌리는 흠칫하며 두 다리를 떨었다.


“강하기 때문이야.”


티틀이 팔에 식충을 감아 퍼스의 앞으로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블루벌리는 큰 위협을 느끼고는 퍼스를 버리고 일보 후퇴했다. 티틀은 홀로 남은 퍼스의 목덜미를 강하게 잡아, 팔에 감겨있던 식충들을 퍼스의 피부에 붙였다.




간지럽다.

녀석들은 여섯 다리로 털을 치우며 피부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시간이 지나자, 그 감각은 천천히 변화를 맞이했다.




따갑다.

털을 뽑고 있는 것인가? 다리에 가시 갈고리들이 걸린 것인가?


식충들이 느리게 살을 파고든다. 녀석들이 게걸스럽게 육편을 먹어치운다. 살에 엉겨붙은 혈관이 터져나가며 선명한 피가 올라온다. 그들의 턱은 멈추지 않고 뼈까지 도달했다. 껄럭거리는 소리를 내는 녀석들은 곧 새로운 먹이를 찾기 시작했다. 이 아담한 식사로 배를 채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퍼스는 미친 듯이 괴로워했다. 그는 온몸이 끓는 기름에 튀겨지는 것 같은 고통에 휩싸였다. 말 하나 없었던 녀석은 어느새 기차 통처럼 크게 울부짖고 있었다.


먹을 수 없는 잉여 조직들 어느 하나 남기지 않은 녀석들은 곧이어, 뼈와 골수 그리고 기계 부품을 파먹기 시작했다.


“퍼스!!!”


블루벌리가 그를 부른 순간, 티틀이 날아와 식충을 감은 다리로 발차기를 날렸다. 블루벌리의 피부로 식충이 옮겨붙기 시작했다.


“아… 아아… 안돼!!!”


이전 퍼스가 끔찍한 몰골이 되어가는 것을 보았던 그는 형언할 수 없는 공포에 빠졌다. 퍼져 나갈 것이다. 잡아먹힐 것이다. 그에게 고통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는 날붙이를 이용해 벌레들을 하나씩 죽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 마리가 죽으면 열 마리가, 열 마리를 죽이면 스무 마리가 달려들었다. 그는 자신이 어떤 과정으로 최후를 맞이할지 알고 있었다. 극도의 공포는 그의 입으로 한 소리를 토해내게 했다.


“자비를…. 자비를!!! 제발 자비를!!!”


티틀은 그 말을 무시하고 블루벌리에게 다가가 그의 온몸을 수차례 가격했다.


“날 잡으려면 몰래 계획을 짰어야지. 냉정히, 침착하게 말이야.”


기도로 향하는 그의 콧물과 눈물이 가파르고 과한 호흡과 합쳐졌다. 그는 꺼억꺼억거리는 소리를 내며 힘들게 숨을 쉬었다.


“이전의 그 의기양양한 의지는 어디 갔지?”


그는 블루벌리를 먹고 있던 식충을 거두고, 퍼스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곳에 퍼스는 없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갉아먹힌 뼈다귀, 뼛가루, 그리고 철의 파편들이 남아 있었을 뿐. 곧 그 모습도 식충들에 의해 완전히 사라졌다.


“감사… 감사합니다!!! 따르겠습니다!!!”


희비가 교차한다. 그의 장대한 계획은 초라한 희생을 낳았고, 어처구니없이 끝났다. 티틀이 눈을 감았다가 뜨자 다시 장난스러운 눈동자가 돌았고, 입이 광대 쪽으로 늘어나며 웃음이 번졌다.


“히히. 좀 과했을지도 모르겠네.”

“흠흠, 확실히 본보기가 되었겠군요.”


다예람이 삐칠 거리며 웃었다. 멀리 있던 암시장의 색채귀들은 고장 난 선풍기 머리처럼 드득거리며 고개를 돌렸고, 천천히 가던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블루벌리.”

“네, 말씀하십시오.”


“예전에 점 찍어둔 색채가 하나 있거든. 녀석을 잡을 별동대를 만들 생각이야. 네 개의 이빨을 모셔봐. 실력 좋아 보이니까.”

“열심히 하겠습니다.”


블루벌리는 진심으로 감격하고 있었다. 어떤 과정이 있었고,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그가 가졌던 강렬한 복수심은 어느새 충성심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 잠시만 예람.”


티틀이 포폭스에게 다가가 말했다.


“포폭스, 이번에도 감시 잘 부탁한다고?”

“엇, 티틀 님. 일정은 다 마무리되셨나요-”


포폭스의 세 번째 눈에 불이 들어왔다.


“응. 다음 명령을 받았어.”

“알겠습니다-”


“예람, 한 번 생각해보자고. 너도 머리가 좋으니까. 어떻게 녀석을 생포하는 게 좋으려나?”







지미와 에디가 천천히 속도를 줄이며 착지했다.


“이들의 땅에 발을 붙이는 것은 얼마 만일까.”

“참으로 오랜만이오.”


“바이젤루스, 에터, 따라와 줘.”


치즈가 앞장서서 큐 파인드와 손님들을 인솔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특이한 분위기의 건축물들이 수호자들의 색에 맞춰 빛이 나고 있었다. 조금 뒤, 검으면서도 푸른빛의 영역으로 된 좁은 평야가 나타났다. 격식도, 편안함도, 무엇도 없는 단순한, 수호자들의 본거지였다.


중앙에는 씰의 의지색으로 만들어진 구름 방석들이 보였다. 그녀는 어리와 함께 누군가와 연락을 하는 중이었다. 일찌감치 그들의 기운을 느낀 어리가 먼저 일어나 그들을 반겼다.


“어서 와. 손님이 많네.”

“응, 이렇게 모인 건 오랜만이지.”

“어리 씨의 용안은 오래간만에 뵈오.”

“용안이라니… 난 평범한 색채인데.”


바이젤루스가 에터의 머리에 손을 얹으며 걸어왔다.


“나도 인사 올리지. 일이 많아 힘들겠군.”

“그래도 보람찬걸. 괜찮아.”

“자영, 오랜만이야.”

“응. 반가워 어리.”


바이젤루스의 옆에서 걸어오던 자영에게 어리가 넌지시 인사를 건넸다. 어리는 침울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큐 파인드가 밝은 표정으로 부담을 덜어주었다.


“괜찮아 어리! 서로 오해는 다 풀렸으니깐!”

“그래도…”

“정말이야.”


자영이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들이 자리를 잡으려 하자, 씰이 감은 눈을 뜨며 그들에게 인사를 건냈다.


“반가워요, 바이젤루스 씨. 여행은 다 끝나신 건가요?”

“끝났지. 그렇지만 잠시 북서쪽에 일이 있어서 말이야. 조만간 가봐야한다.”

“그렇군요. 늦었지만 자영 씨, 저도 죄송합니다.”

“이젠 어떤 응어리도 없어. 앞으로 잘 해나가자.”


치즈와 큐 파인드가 차례대로 방석에 앉았다. 씰이 손을 꼬는 손짓을 하자, 바이젤루스와 에터, 자영 앞에 푹신한 방석이 생겼다.


“씰! 누구랑 통화했어?”

“경비대들이에요, 파인드. 암시장 건에 정신이 팔려버렸거든요. 다행히 별일은 없었답니다.”


자리를 잡은 그들은 방석을 돌려 서로 얼굴을 마주 봤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어두운 얘기부터 하게 되었군.”

“하지만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소.“

“자영은 큰 결심을 내렸다. 자신의 손으로 의지를 꺾는 자를 처단하기로 마음 먹었지.”

“역시, 그렇게 되었군요.”


씰이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게도 자영은 우리에게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각자,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알고 있겠지.“

“우리도 마침 암시장에 대해 알아보고 있었어. 서로 아는 정보를 공유해보자고.”


어리의 말에 바이젤루스가 운을 떼기 시작했다.




“그녀가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과거 색채귀들과 백지령들의 대전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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