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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먹을 거 구해왔어! 너도 먹을래?”

메어가 바유와 옅은 이들과 함께 과일을 들고 자영에게 왔다. 형형색색, 가지각색의 과일들이 있었다. 모두가 배불리 먹을 양이었다.

“너, 음식을 먹어?”
“응? 왜?”
“우린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살 수 있잖아.”
메어는 충격을 받은 듯 눈을 크게 떴다.

“당연히 먹어야 하는 줄 알았는데…”
“메어, 말했던 것 같은데.”
바유가 메어에게 넌지시 얘기했지만 메어는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손을 떨었다.

“왜 그래?”
“그야 지금까지 이걸 얻으려고 도저기들을 마구 괴롭혔는걸…”
“겨우 색채귀에게 감정이입하는 거야?”
“그럼 안 해도 돼?”
“하지 마.”
“알았어!”
메어는 금방 씽긋 웃었다. 자영은 어이가 없다는 듯 메어를 바라봤다.

“한두 번이 아니다. 참 어리숙해.”
“동감이야.”
자영이 바유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이것까지만은 먹자. 구해온 게 아까워…”
메어가 바유와 옅은 이들에게 과일을 나눠줬다. 메어는 미리 옆에 빼놓았던 커다란 과일을 자영을 향해 건넸다.

“자, 너도 먹어.”
“안 먹어.”
“스승님! 드셔 주시죠!”
“스승이라고 부르지 말랬지.”
메어가 이상한 목소리와 함께 요란한 자세로 과일을 권했다. 자영은 한숨을 쉬며 거절했다.

“나는 나름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난 원래 음식을 안 먹어.”
“그렇구나. 근데 그게 아니라고? 그럼 친해졌다는 거야?”
“아… 아니.”
자영이 살짝 놀라며 말을 더듬었다. 메어는 밝게 웃으며 과일을 쪼갰다.

“좋아! 앞으로 9,000보만 더 걸으면 되겠어!”
“웃지 마라. 메어. 무서워 보인다.”

기뻐하면서 과일을 먹는 메어에게 바유가 말했다. 메어와 바유가 티격태격하기 시작했다. 자영은 눈을 감았다. 자영은 자기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친해졌다? 그저 같은 도망자 신세일 뿐인데? 애초부터 어째서 그녀를 제자로 받아들인 것일까?

메어와 자영은 다시 여정길에 올랐다. 하얀 들판과 숲들이 보랏빛으로 물들었다가, 물이 빠졌다가를 반복했다. 계속 이어지던 같은 풍경. 그러던 중 그녀들의 앞에 한 옅은 이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또 옅은 이들이네! 반가워!”

“색채귀처럼 무섭게 생겼는데… 아니겠죠, 대장?”

예의없는 첫 마디를 들은 메어. 올라오는 약간의 분노를 참으며 말을 이어갔다.

“난 마니악 메어. 가지색 색채야. 이쪽은 자영!”

“자영님!! 역시 아름답게 생기셨네요!”

그들의 대장은 마치 자영을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그런데 너무하지 않은가. 메어가 아무리 무섭게 생겼어도 이렇게까지 말을 해야 했을까. 메어는 속이 끓었지만 웃으면서 악수를 청했다.

“정식으로 인사를 올리죠. 저는 색채귀 사냥꾼 대장인 미우라고 합니다.”
“색채귀 사냥꾼? 독특하네!”
미우와 메어가 악수를 했다. 자영은 옆에서 다른 옅은 이들을 보았다. 이어 자영이 말했다.

“우연이네. 색채귀 사냥꾼에 대해서 소문은 들었지만.”
“저희도 자영님에 대해서 소문으로만 들었습니다. 직접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네요.”
“자영, 너 참 유명하다?”
메어가 뾰로통한 표정으로 자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난 이런 거 싫어.”
자영이 조용히 말했다. 메어는 부러운 눈으로 자영을 바라봤다.

“그래서, 너흰 지나가는 길이야?”
“네. 색의 영역이 느껴지길래 왔습니다. 잠시 보호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 좀 쉬고 가.”
메어가 흔쾌히 그들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색채귀 사냥꾼들은 모두 네 명이었다. 아주 옅은 노란빛이었다. 의지가 강해보이는 대장인 미우와 그 부하로 보였다. 소속 없는 옅은 이들이 으레 그렇듯 간단한 형태의 몸에 팔다리가 붙어 있는 모습이었다. 미우는 그 중 덩치가 가장 컸다. 그들은 모두 백색의 나무로 된 새총과 같아 보이는 것을 들고 있었다. 아무래도 영역의 외부인 백지에서 자라는 식물들을 이용해서 만든 무기인 것 같았다.

“미우라고 했나? 너희는 어떻게 색채귀들을 사냥하고 다니는 거야?”
“간단해요. 이런 무기들을 이용해서요. 제가 가장 힘이 세고 날쌔니 색채귀를 유인해요. 그리고 나머지 친구들이 뒤를 급습하는 식이죠.”

“오호라, 효율적이네!”
“예전에는 더 많은 친구들이 있어서 쉬웠지만…”
미우가 말끝을 흐렸다. 메어는 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힘을 계속 길러서 색채귀들을 모두 쓰러뜨릴 거예요.”
“친구들을 위해서 열심이구나.”
메어는 미우의 말에 공감했다. 

“색채귀, 얼마나 많이 만나봤어?”
자영이 슬그머니 얘기에 끼어들었다.

“정말 많죠. 얘기해 드릴까요?”
“응.”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푸른빛의 나무와 같이 생긴 녀석이네요. 그 녀석은 자꾸 무서운 소리를 내면서 우리를 쫓아왔어요. 마치 협박을 하는 느낌이었죠. 고동색의 외다리 도마뱀들도 생각나네요. 함부로 건들 수 없는 유명한 녀석들이죠.”
“푸른빛의 나무라! 그것만 듣고는 모습이 도저히 연상이 안 되는걸!”
“뿌리로 걸어 다니는 느낌이었어요.”
“꽤 징그러울 것 같네…”

“대장, 그것도 있죠.”
“응?”
“그 빨간 녀석도 만난 적 있잖아요.”
한 옅은 이가 미우에게 말했다. 미우는 그 일을 떠올린 듯 보였다. 미우는 곧바로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렇죠. 이 녀석을 빼놓을 수 없네요. 수호자들은 오(惡)라고 부르더군요. 소문대로, 거대한 이빨같이 생겼었어요. 하늘을 활공하면서 주변의 옅은 이들을 쫓아가고 있더군요.”
“날아다니는 거대한 이빨?”

메어가 상상을 시도했다. 이빨? 날개가 달렸나? 이빨은 송곳니인가? 생각할수록 괴악한 모습이 되어가는 상상 속의 오(惡). 

“증오의 턱.”
“맞아요. 분노의 색채귀죠.”
자영의 말을 듣고 미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마주하고도 살아남았다니 신기하네. 그 녀석은 정말 포악하기로 유명하거든.”
“천운이었죠.”
“저기… 그래서 어떻게 생긴지 더 자세히 말해줄 수 있어?”
메어가 끙끙 앓는 느낌으로 말하자 미우가 답했다.

“아… 그게… 정말 날아다니는 이빨… 아, 턱이라고 하는 게 더 맞겠네요.”
“정말 상상이 안가는 모습이네…”
메어가 웃으면서 말했다.




이런저런 얘기가 오고 갔다.

메어가 마주했던 색채귀들에 대한 정보, 다른 경험담들, 재미있었던 일화… 수 시간의 대화가 이어졌다.

“녀석들은 영역의 흔적도 참 잘 찾죠. 먹잇감을 노리는 능력이라고 할까요.”

색채귀들은 위협을 감지하는 능력이 떨어지지만, 대신에 영역의 흔적을 찾는 추적 능력이 발달해있다. 일반적인 색채는 그 반대다.

“그래서 도망치기 힘들지.”
미우의 말에 자영이 한숨을 쉬며 답했다.

“나만 가진 능력인줄 알았는데…”
“일화를 들어보니, 메어씨도 보통은 아닌 것 같네요.”
“궁금한 거 있어! 너희도 누가 색채귀인지 본능에 따라 알 수 있니?”

“그 특유의 불쾌하고 답답한 느낌이 있어요. 위협적으로 생긴 녀석들은 십중팔구 색채귀지요. 하지만 자영님처럼 아름다운 미모를 갖고 있으면서도 색채귀인 녀석들이 있어요. 저흰 워낙 많은 색채귀를 만나봐서 그 기운을 느낄 수 있죠.”
“그렇구나! 근데 그러면… 아까 날 왜 색채귀로 의심한 거야?”
“죄… 죄송합니다…”

대화가 점점 끝나갈 무렵, 메어가 흥미로운 질문을 던졌다.

“혹시 말이 통하는 색채귀는 있었어?”
“있을 리가요!”
미우가 당연하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물론 녀석들과 대화를 나눌 수는 있었죠.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의사소통. 그들의 본능에는 악함이 가득해요. 천성을 누를 수 있는 색채귀는 절대로 없을 겁니다.”

“하긴… 그랬다면 수호자님들이 말로 진작에 해결했겠지…”
“바보네.”
자영이 메어를 향해 말을 툭 내뱉었다.

“이게 그렇게 이상한 생각인가?”
“당연한 거 아니야. 너 뭐가 뭔지 정말 하나도 모르… 아니다.”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예요.”

자영과 바유, 미우가 동시에 말했다. 자영은 이마를 짚었다. 바유는 한숨을 쉬었다. 미우는 처량한 눈으로 메어를 바라봤다. 부담스러운 기운이 메어에게 느껴졌다.

“어… 다수결의 원칙으로…”
“네 맘대로 해라.”
바유가 메어의 말을 끊고 얘기했다. 아까와 같이 메어와 바유는 티격태격하기 시작했다. 미우는 이상한 것을 보듯 그들을 바라봤다.

“물러터졌어.”
자영이 조용하고 적적하게 중얼댔다.


“그래. 잘 가고! 다음 번엔 더 강한 의지로 서로 만나자고!”
“감사했습니다. 그럼…”
메어의 인사를 뒤로 미우와 사냥꾼들은 자리를 떠났다. 그들은 새벽색을 같이 보고 잠이 들었었다. 한 곳에 계속 머무는 것은 쫓기는 처지에서 전혀 좋은 선택이 아니다. 메어 일행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메어는 천천히 걸으며 자영에게 말했다.

“그런데, 우리 목적지는 있어? 어디로 가는 거야?”
“딱히 없지. 금색 색채랑 벌레 녀석의 눈만 피하려면 어디로든 움직여야 해.”
“벌레 녀석?”
“날 쫓는 녀석들을 부리는 주인. 이름은 티틀.”

메어는 다시 한 번 두려움이 들었다. 자영을 쫓기는 신세로 만드는 질투의 색채귀들. 그들을 부린다라! 너무 무모한 선택을 해버린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메어는 금색 색채의 눈에 들어왔을 뿐이다.

허나, 메어는 강해져야 했다. 색채로 산다면 색채귀와 대면하는 일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자영과 만나지 않았다면, 그대로 도태되었을 수도 있다. 거기서 메어는 단념했다. 이미 지난 일. 자신이 선택한 일이기에. 메어는 자신의 굳건한 의지를 믿었다.

“언젠간 그 녀석도 만나야겠네!”
“그렇지.”
“함께 이겨내자고! 자영!”
자영은 말이 없었다. 메어와 자영은 나아간다. 그녀들의 발자취는 어떤 그림이 될까?

“집결!!!”

일사불란한 소리. 요동치는 영역. 레코드판 소리가 멀리 퍼지기 시작한다. 동굴과 같았던 골로버와 엘도라스의 방은 보이지 않는다. 빽빽했던 벽도 마찬가지. 구조물들이 사라진 금색 색채의 영역은 꽤나 볼품없었다. 허나 그 공간을 꾸며주는 미사여구들은 많았다. 포동포동한 옅은 이들. 혼들. 그리고 골로버와 엘도라스까지. 금색 색채의 뒤로 줄 선 옅은 이들의 경치는 연회를 위해 모인 귀빈들 같았다. 그들은 출정을 준비하고 있었다.

“열중- 쉬어!!!!!”

옅은 이들 앞에 서 있는 각 분대의 혼들이 목청이 터지도록 부르짖었다. 만화같이 과장된 그들의 울음소리는 레코드 판 소리를 압도하며 영역을 칠해나갔다.



10초가 흘렀다.

귀가 먹먹해졌다가, 다시 레코드판 소리가 천천히 들려온다. 백여 마리 즘 되어 보이는 옅은 이들은 동상처럼 움직임을 멈췄다. 혼들의 뒤로, 골로버가 천천히 걸어왔다.

“주목.”
“주목해라~”
골로버의 첫 마디. 그리고 거기에 첨언하듯 엘도라스가 운을 띄웠다.

“우리는 지금부터, 자영을 잡으러 간다.”
골로버의 이어지는 말에 옅은 이들이 수군댔다.

“다만, 제군들이 할 일은 간단하다.”
이어지는 골로버의 말에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최근 거래를 했다. 한 색채귀였지. 적의 약점을 잘 알고 있는 신통한 녀석이야. 녀석은 우리 편으로 싸울 것이다. 허나 이걸로 자영이 쉽게 패할 것으로 생각하진 않아.”
골로버가 잠시 뜸을 들이고 말을 이어갔다.

“어찌 되었건 녀석들은 서로 큰 피해를 볼 것이고… 우린 어느 쪽이건 약해진 놈에게서 영역을 쟁취해내면 되는 것이다. 제군들의 도움이 있다면, 더욱 쉽겠지.”
“의지를 보여라~ 이번 기회에 색채가 되어라~!!”

엘도라스의 말이 끝나자 옅은 이들이 사기충천의 울음소리를 냈다. 그들은 자신들을 폭풍을 일으키고 있다 생각했다. 그들은 전진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폭풍을 일으키고 있다. 우리는 폭풍이다. 마음 속으로 복창한다.

“의외네. 자영이 다른 색채와 같이 있었을 줄이야.”
“뭐 그렇게 거래는 성사되었다.”

티틀은 페라우스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페라우스는 앉아있는 티틀의 반대편에 있었다. 티틀의 영역과는 약간 다른 모양새였다. 그곳은 어두침침했고, 사방은 명도가 낮은 초록빛을 띠고 있었다. 공간은 마치 성당과 같이 위가 크게 뚫려 있었다. 티틀과 페라우스의 목소리는 그 공간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이제 우리와의 계약은 끝이네.”
“그렇군.”
“가끔 정보가 필요하면 부를게. 너는 대단한 인재니까.”
페라우스는 티틀의 말에 웃으며 자리를 빠져나갔다.

“음… 무슨 꿍꿍이이려나- 이제 상관없으니까 신경 끌까?”

티틀이 중얼대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티틀이 일어서자마자 밖에서 노크 소리가 작게 들렸다. 티틀이 들어오라고 넌지시 말하자, 리머미가 천천히 모습을 보였다. 리머미의 몸은 다시 재생되어있었지만, 전과 달리 확연히 너덜너덜한 모습이었다. 독은 축 처진 채 빛을 미약하게 내고 있었고, 영역도 힘없이 깜빡이고 있었다.

“꼴이 말이 아니네 리머미.”
“도망쳤다… 위협적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 자영인데. 실력은 어디 안 가지.”
“아니… 이건 자영이 한 짓이 아니다…”

“그럼?”
“번개를 쓰는 색채…”
티틀이 흥미롭다는 듯 쳐다보았다. 리머미는 자신이 메어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을 늘어놓았다. 얘기를 들을수록 티틀 특유의 깔보는듯한 눈매가 더욱 선명해졌다.

“오호! 재밌어 재밌어. 그 색채가 페라우스가 골로버에게서 들은 녀석이겠네. 그런데 넌 그런 생초보에게 치명상이나 입고 오다니. 체면이 말이 아니야.”

“약점을… 파악 당했다….”
“너의 도피하고 싶은 의지는 도망갈 때나 나오는 건가?”
리머미는 말이 없었다. 티틀은 웃으면서 자꾸 리머미의 신경을 긁었다.
“뭐 그렇지만 어쩔 수 없지! 이래 봬도 너는 우리의 자원이니까. 다음부턴 잘해. 아, 시간이네. 교대하러 가봐.”
“알았다…”

리머미는 그 말을 뒤로 자리를 빠져나갔다. 티틀은 재미있는 놀이를 즐기는 아이와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재밌어지겠어. 생각보다 흥미로운 녀석이었잖아? 직접 얼굴이나 보러 가볼까…”
“또 단독행동인가?”

티틀이 웃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목소리가 난 곳엔 한 덩치 큰 자가 있었다.

오늘의 도감!

티틀

색채귀를 사고파는 암시장의 대표!

성가신 녀석이야. 수호자님들도 위험하다고 평가하더라?
얼마나 많은 색채귀를 부리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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